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신 타이거스 (문단 편집) == 인기 == [[파일:external/pds.exblog.jp/c0058764_15104121.jpg]] 사실 간사이 지역에서 처음부터 한신이 압도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TV에서 볼 수 있는 야구팀이 요미우리뿐이라 간사이에서도 요미우리 팬이 됐던 사람들이 많았고, 한신은 요미우리의 가장 오래된 라이벌로서 요미우리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 정도의 팀이었다. 실제로 1980년대 초까지 [[한신 고시엔 구장|고시엔]]에서 만원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대진은 [[전통의 일전|한신-요미우리 전]]뿐이었고, 1973년 한신의 에이스 [[에나츠 유타카]]가 연장 끝내기 홈런으로 자신의 [[노히트 노런]]을 완성했던 경기의 관중 수도 (실 관중 집계가 아니었음에도) 9000명에 불과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간사이 지역에는 한신 외에도 [[퍼시픽 리그]]의 난카이 호크스, 한큐 브레이브스, 킨테츠 버팔로즈가 있었고, 난카이가 5~60년대, 한큐가 6~70년대에 퍼시픽 리그를 씹어먹으면서 퍼시픽 리그 팀들을 응원하는 팬들도 많았다. 1959년 난카이 호크스가 일본시리즈를 우승하자, 오사카의 중심가인 [[미도스지]]에서 퍼레이드를 벌였을 정도. 그러다가 1969년 한신의 연고지인 [[효고현]]을 기반으로 하는 [[선 텔레비전]]이 한신 편파 야구 중계 방송을 시작했고, 편성의 구애를 받지 않는 [[독립방송국]]의 이점을 살려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중계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신의 인기가 점차 올라가던 중, 1985년 팀이 21년 만의 리그 우승과 사상 첫 [[1985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하자 간사이를 포함한 일본 전역에 '''타이거스 열풍'''이 불었고, 이를 계기로 한신은 간사이 대표 팀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90년대 이후에는 미디어의 발전으로 다른 팀의 경기를 보는 게 쉬워졌고, 응원 팀을 옮겨가는 일이 많아져서 요미우리 팬의 숫자가 좀 줄어들었으며, 퍼시픽 리그 팀들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연고지 이전]]과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구단 합병]], [[오릭스 버팔로즈|밉상짓]] 등으로 인해 인기가 시들해졌다. 그리하여 간사이 지역 야구 팬들의 민심은 한신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인기는 엄청 좋은데 성적이 시원치 않다는 점에서 [[엘롯기|인기는 성적순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는 구단이다.]] [[한신아재|인기가 많은 만큼 극성 팬이 많다.]] 팀 선수가 특정 경기에서 활약하면 거의 찬양하다시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애정을 쏟아붓는 반면에 못하면 간판 선수고 뭐고 상관 없이 [[역적#s-5|반역자 취급]]하며 가루가 되도록 까는 것이 한신 팬들의 모토. 그 임팩트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까인다. 그래서 [[2014년 일본시리즈]] 5차전 시합이 끝난 뒤 팀 내 인기 선수 중 하나인 [[니시오카 츠요시]]가 신명나게 까였고 또 그 전날에는 [[오승환]]이 까였다.[* 자세한 사정은 [[2014년 일본시리즈]] 문서를 참조.] 그리고 2014년 일본시리즈 5차전은 소프트뱅크가 일본시리즈 우승을 확신하던 시합이었던 만큼 한신 팬들의 분노가 절정으로 치솟아 있던 상태였던지라 [[후쿠오카 돔]] 외야 쪽엔 [[https://twitter.com/yuuuuu_n0111/status/527817875994587139|분노로 가득찬 한신 팬들이 집어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수의 한신 응원도구들이 쫙 깔려 있기도 했다.]] 2020년대 이후로는 [[코로나19]], [[유튜브]] 등의 영향으로 응원문화가 바뀌면서 대책없는 선수, 타 팀 비난의 경우 조금은 줄어들었다.[* 대신 인터넷상 실황 중계가 인기 컨텐츠로 떠오르고 있어서, 한큐한신토호홀딩스에서 한신 중계로 파트너를 받은 [[트위치]] 스트리머에게 한신 타이거스 굿즈 케이크 광고를 주기도 했다.] 대신에 한신 대상으로 쳤던 [[설레발]]의 악명을 알고 있어서 설레발을 타 팀 선수들 대상으로 시전하고는 한다(...). 특히 상황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마무리 투수]]라는 포지션 같은 경우, 오승환으로 예를 들자면 조금이라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한신 팬들은 트위터나 2ch 실황 중계에서 기다렸다는 듯 '''"[[마!]] [[후지카와 큐지|후지카와]] 데꼬 와라!"''', '''"오승화이 치아뿌라!"''' 등의 욕으로 도배 되었고, 한신-[[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와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일이 터지면 거의 반년이 넘도록 우려먹어지는데 [* 여담으로 2014년 오승환의 블론세이브는 6개인데, 3개가 [[퍼시픽 리그]]와의 [[교류전]]이었고 나머지 3개가 [[센트럴 리그]]와의 경기였는데 그중 2개가 요미우리전 경기였다.][* 대표적인 게 2014 일본시리즈에서 소프트뱅크 나카무라에게 끝내기 쓰리런을 맞은 경우, 2014년 7월 요미우리와의 홈 경기에서 대타로 나온 다카하시 요시노부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던 경우 등.] 그 다음 날, 곧바로 퍼펙트 피칭으로 지난 경기를 만회하는 피칭을 하면 하루만에 [[우디르|태세 전환]]을 하면서 '''"역시 한신 수호신은 오승환이야!"''', '''"승환이 대단해!"''' 라며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흔한 일상이었다. 사실 강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식의 선수 취급은 딱히 한신만의 문제도 아니고, 일본만의 문제도 아닐뿐더러, '''야구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소위 프로 명문 구단일수록 강성팬들이 많다. 우승 횟수가 많고 그만큼 팬덤 역시 극성스러운 면들이 높아져서 조금만 잘못되어도 물고 늘어지는 건 덤이다. 또한 일본프로야구에서 [[노무라 카츠야]] 감독이 언급할 정도로 코로나19 이전까지 잘못된 후원회 문화의 사례로 언급되기도 했다.[* 전국에 팬들이 많다 보니, 노무라 감독이 원정 경기에서도 스폰서들이 밤의 유흥가로 불러내어 숙소에 구단 직원들밖에 남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와 자주 비교 대상이 되는 센트럴 리그의 대표. [[꼴리건]]급의 [[한신아재|열광적인 팬]]들을 가진 구단으로 유명하다. 거기다 지역밀착형이라 간사이 지방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구단.[* 한신이 오랜 기간 간사이를 대표하는 센트럴 리그 구단이었던 것도 있지만 오사카 부근의 다른 야구 구단들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른 지방으로 옮겨가거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아예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오릭스 버팔로즈|연고지나 구단명을 철새마냥 왔다갔다하는 등 밉상짓을 하거나]] 해서 지역 야구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탓도 있다.] 이 반작용으로 성적이 안 좋으면 언론과 [[한신 전기철도|모기업]] [[주주총회]]에서 가루도 안 남을 정도로 까이고 또 까이며, 뭇 간사이인들의 술안주가 된다. 정말 바다 건너 [[롯데 자이언츠]] 그 자체. 오죽하면 간사이 지방을 빗대서 '''한신국(阪神国)'''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어느 정도냐 하면 [[4466566664|팀 성적이 바닥을 긁던 1990년대 말]]에도 '''"홈팀 좌석에 빈 자리가 좀 보이더라"''' 레벨이었고[* 엄밀하게는 [[노무라 카츠야]]가 취임하고 한신 팬들에게 [[희망고문]]을 시작한 시기부터 이 정도.] 팀 성적이 좋아진 2000년대에는 '''원정팀 좌석을 제외하면 무조건 꽉 찼다.''' 하지만 그 전에 막장 [[감동님]]들이 지휘권을 잡던 시절이나 팀 성적이 바닥을 헤메던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중후반에는 관중 동원력이 떨어져 그 넓은 고시엔 구장의 절반 가량을 [[공기수송|공기로 채우고 경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1992년처럼 잠깐 성적이 좋아진다 싶으면 [[매진|그새를 못 참고...]]~~ 그 당시를 기억하는 올드 팬들로부터는 "그때는 아무 때나 가도 표가 있었는데 요새는 성적이 좋아지니까 표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면서 배부른 푸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카와사키 구장]]처럼 외야가 황량해도 나가시소멘을 먹는다든지 [[마산 야구장]]처럼 외야가 널럴해도 [[삼겹살]]을 [[마산아재|구울 순]] 없다. 한신 타이거스 팬 자격 시험을 '''돈을 내고''' 보기도 하며, 예상 문제집을 만들어서 팔기까지 한다. NPB 구단 중 유일하게 특정 팀만을 위한 게임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름하여 '한신 타이거스 DS'. 개발사는 [[스파이크(게임 회사)|스파이크]]. 발매시기인 2008년의 시점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문제의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다. 절정은 다름아닌 '''2001년 2군 웨스턴리그 우승 결정전 당일의 라인업을 나열하라'''는 문제까지 나오는 특급 난이도. 게임 리뷰어 [[からすまAチャンネル|からすまA]]는 이 문제를 보고 "이런 걸 누가 맞추냐! 관계자들도 기억 안나는 쪽이 더 많을거 아냐!"라고 리뷰 영상에서 디스했다. 때문에 우승 한 번 했다 치면 간사이가 난리가 난다. 2003년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했을 당시에는 오버 좀 섞어서 전 도시가 세로 줄무늬(한신 유니폼)로 칠해졌으며, 우승 기념으로 출시된 세로 줄무늬에 한신 엠블럼이 박혀 있는 '''한신 우승 기념 [[게임큐브]] [[한정판]][[https://www.google.com/search?q=gamecube+hanshin+tigers&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jH7-zaitDmAhVFE4gKHXBgBOwQ_AUoAXoECAsQAw&biw=1870&bih=936#imgrc=JPpUTmti0NzKCM:|#]]'''[* 보통 큐브보다 정가가 1만 엔 가량 비쌌다.]이 순식간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게임큐브의 제작사인 닌텐도의 본사가 간사이 지방인 교토에 위치하고 있어서 만들어진 한정판. 사실 이 한정판은 당시 [[닌텐도]]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올해 한신 우승하면 게임큐브 한정판 제작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던 것에 대한 실제 제품에 해당된다.[* 그런데 닌텐도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한정 [[닌텐도 64]]를 판 적도 있었다.[[http://nintendo64.wikia.com/wiki/Limited_Edition_Daiei_Hawks_console|#]]][* 참고로 닌텐도의 본사 소재지는 교토로 도쿄가 아닌 간사이권에 본사를 둔 몇 안되는 유명 기업 중 하나이다.] '''[[2023년 일본시리즈|그리고 38년이란 세월을 지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2017년 기준 평균 관중 수 4만 2천 명대로, 거인을 2위로 따돌리고 일본 1위에 올랐다. 전 세계로 봐도 한신보다 평균 관중이 많은 팀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뿐이다. 전 세계 평균 관중 2위의 초거대 팬덤을 보유한 야구팀. 심지어 2018년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 혼조 타스쿠 [[교토대학]] 교수[* 게다가 [[오카다 아키노부]] 후원회장이다.]도 노벨상 수상 다음날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한신이 강해지기 위해선 [[카네모토 토모아키|감독]] 교체가 특효약이라고 밝혔고[* 이 말은 야노 아키히로가 2020년 드래프트를 성공시키고 오카다 감독이 한신을 38년만에 우승시키면서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 되었는데, 카네모토 감독도 [[오오야마 유스케]] 등을 뽑아 우승에 조금은 공헌했다.], 2020년에는 요미우리 편파 판정이 워낙 심해 아예 [[AI]] 심판을 들여놔야 한다고 밝혔다. [[https://www.sanspo.com/article/20181003-ZJQN575UJ5M77BU5QOHOMRLZ4Y/| ]] [[https://www.dailyshincho.jp/article/2021/02271056/?all=1| ]] 또한 201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요시노 아키라]]도 어렸을 적 [[간사이대학]] 바로 옆에서 살아 당시 야구부 소속 [[무라야마 미노루]]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자란 한신 팬이며 고시엔 백네트에서 야구를 볼 때 땅이 흔들릴 정도로 감동했다고 밝혔다. --노벨상 수상자도 참을 수 없는 한신의 야구-- 외식업계에서도 인기 있는 구단이다. 선수들 단골집이 타 구단에 비해 방송에 맛집으로 소개되는 빈도가 높은 편이며 한신 팬들이 모이는 이자카야도 많다. 도쿄뿐만 아니라, 칸사이 이외 지방에서도 한신 팬들이 모이는 이자카야는 심심치 않게 있을 정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